運命の人 · 性 律法3カ条

새로운 사회의 성(性)율법 3개조(条)와 자유부인(自由夫人)

Sophian(소피안) 2017. 12. 4. 12:48

새로운 사회의 성(性) 율법 3개조(条)와 자유부인(自由夫人)


条  人格体에 관한 것

条  所有에 관한 것

 和姦에 관한 것

 

 

   

[스크랩]'바람난 여성'의 대명사 『자유부인(自由夫人) ↓  포스트 상세정보: 출처: 다음 / 블로거: 언덕에서

원문: http://blog.daum.net/yoont3/11300806   2015/01/31 11:45

 

'바람난 여성'의 대명사 『자유부인(自由夫人)



자유부인. 정비석(鄭飛石)의 장편소설로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21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 연재 완료와 동시에 정음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자유부인>은 한국 출판사상 최초의 10만 부 이상 팔린 소설로 기록되고 있다.

6ㆍ25전쟁 직후의 퇴폐풍조와 전쟁미망인의 직업전선 진출 등 당시의 절실한 사회 단면을 파헤침으로써 지성의 힘을 각성시킬 의도로 쓴 소설이다. 성윤리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 이 작품은 영화화되어 <속자유부인>까지 나올 정도로 선풍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 소설은 대학교수의 부인이자 선량한 주부인 오선영이 우연히 대학동창을 만나게 되면서, 남편의 제자와 춤바람이 나고, 유부남과 깊은 관계에 빠져 가정파탄의 위기에 처하지만, 남편의 아량과 이해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연재 도중, 성윤리와 도덕성 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통속적 애정소설이 아니라, 광복과 함께 몰려온 서구 자유주의 물결과 그것으로 인하여 조성된 사치와 허영의 풍속도를 묘사한 세태풍속설로서 시대변천에 따른 윤리관의 붕괴, 세태인심의 변화를 다룬 것이기도 하다.

 

1956년 한영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자유부인>의 한 장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대학의 국문과 교수인 장태연은 성실한 교수로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소장학자이고, 그의 아내인 오선영 또한 고운 마음씨의 선량한 가정주부이다.

그러나 오선영은 우연한 기회에 노상에서 만난 대학 동기동창인 최윤주의 권유로, 당대 유력자의 부인으로 있는 동창생들의 모임인 화교회에 참석하여, 그 자리에 모인 동창들의 화려한 모습에 접하자 자기 자신과의 비교 속에서 마음의 동요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오선영은 최윤주의 소개로 실업가 한태석의 부인인 이월선을 알게 되고, 이월선이 경영하는 서울 시내 복판에 있는 양품점 파리양행(巴里洋行)에 취직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화사한 바깥세계에 짙게 물들어가기 시작한 오선영은 사교춤에 대한 선망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웃에 사는 남편의 제자 신춘호와 춤바람이 나서 가정이 깨어질 위기에 처한다.

한편, 장태연은 미군 부대에 종사하고 있는 한국인 사무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기회에 알게 된 미모의 타이피스트 박은미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나, 박은미의 결혼으로 장 교수의 감정은 미련 속에 사그라지고 만다.

오선영을 유혹하여 가정 파탄의 전야에까지 이르게 한 신춘호는 오선영 오빠의 딸인 명옥이와 가까워져, 이 두 사람은 미국 유학을 떠나고, 질투와 울분에 불타던 오선영은 한태석과 깊은 관계에 빠져들어 가려는 순간 이월선의 추적으로 중단되게 된다.

탈선된 행위와 좌절로 실의에 빠진 오선영은 생활의 의지를 거의 잃어 자포자기로 빠지게 되나 장태연의 무한한 아량과 이해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정음사 단행본 표지와 당시 영화 포스터


소설 <자유부인>은 줄거리 속에 처음부터 흐르고 있는 감미로운 분위기, 위태위태한 스토리 전개로 특히 전후 풍조에 휩쓸려 자유 분망함을 동경하던 인텔리 가정부인들과 남녀 학생층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여기에다 매회 자극을 깔면서 다음 회를 기다리게 하는 작가 정씨의 원숙한 필치에 삽화가 김영주(金榮注)씨의 신선한 컷이 곁들여져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 소설 연재와 함께 <자유부인>은 바로 '바람난 여성의 대명사'가 되었고 吳 여사에게 양춤을 가르치며 애정을 고백하는 ‘신춘호’가 오 여사를 ‘마담’ ‘마담’이라 부르며 보채는 말과 오 여사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최고급품, 최상품으로 주십시오’라는 말을 연발하는 사기꾼 ‘백광진(白光鎭)’ 사장의 허풍이 바로 새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이러할 때 <자유부인>의 인기를 더욱 부채질한 것이 황산덕 교수의 <자유부인 작가에 드리는 말>이란 비판의 글이었다. 당시 도입부를 막 끝낸 <자유부인>은 오 여사가 연하의 대학생과 벌이는 춤바람과 애정 행각이 점점 노골화되고 장 교수 또한 젊은 타이피스트에 대해 야릇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장면으로 전개되고 있을 때였다.

특히 소설 속에서 “장 교수는 문득 곤색 스커트 밑으로 들여다보이는 은미의 하얀 종아리가 눈에 띄는 바람에 별안간 가슴이 설레었다. 젖빛으로 뽀얗고도 포동포동 살이 찐 무척 아름다운 종아리다.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만 같고, 손으로 어루만져 보면 손끝에 분가루가 묻어날 것만 같은 종아리다. 무슨 뛰어난 예술품처럼 황홀감이 느껴지도록 아름다운 종아리다. 사람의 육체에 이렇게 아름다운 부분이 있을 줄은 몰랐다. 뜻하지 않았던 곳에서 비상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장 교수는 점잖지 못하게 남의 집 처녀 종아리를 잠시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장면 묘사에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있던 황 교수가 ‘참을 수 없어 붓을 들고’ 공격에 나섰던 것이다.

 

 

 

 

이 소설의 구성은 6ㆍ25전쟁 이후 전후적(戰後的)인 사회의 성(性)모럴의 혼란상을 배경으로 하여, 대학교수 부인이 춤바람에 미쳐 젊은 대학생과 놀아나고, 교수는 젊은 피아니스트를 탐하게 된다는 지극히 통속적인 스토리로 되어 있다.

서양적인 생활 풍속과 우리의 그것 사이에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진통기(陣痛期)의 한국사회의 한 타락상을 대중적인 기호에 맞춰 전개해 나갔다. 연재 석 달 만에 황산덕(黃山德)이 신성한 대학교수를 모욕했다는 논지로 [대학신문]을 통해 공격의 화살을 펴자 정비석은 [서울신문]에 이를 받아 논박했다. 세칭 박인수(朴仁秀) 사건이 일어날 만큼 춤바람ㆍ곗바람ㆍ치맛바람으로 퇴폐 일로를 치달았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독차지했다.

 

 

황산덕 교수 ↑

 

  이 작품은 연재 도중, 작품 속에 내재하는 성윤리의 도덕성 문제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많은 독자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이 작품의 의의는

많은 독자를 가졌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사회상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파헤쳤다는 점에 있다.

특히, 휴전협정이 조인된 다음해인 1954년을 전후하여 사교춤이 유행하고, 전쟁미망인이 직업전선에 진출하면서 여성들의 경제적인 지위 향상과 더불어 전후의 허영·퇴폐풍조가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 때를 배경으로 이런 풍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지성의 힘뿐이라는 점을 각성시키려는 의도에서 쓴 것이라는 점에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자유부인> 세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미심장하다.

  

 2015-01-31 2: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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