運命の人 · 性 律法3カ条

“레이건, 할리우드 톱스타 50여명과 잠자리”--테컴세의 저주가 아직도 그를 따라다녀?

Sophian(소피안) 2017. 12. 4. 13:26
테컴세의 저주(Tecumseh's curse)가 아직도 로날드 레이건을 따라 다니나?  
   
        

 영국의 더 타임즈가 최근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前 미국 대통령의 폭풍적 여성편력를 폭로하여, 레이건의 명예에 가히 '치명적'이라고 할만한 상처를 입히고 있다. 레이건은  마치 '부관참시'라도 당한 꼴 같다.   
  레이건은 1980년, 제40대 美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테컴세의 저주(Tecumseh's curse)'에 걸려 재직중에 사망할 것이라고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으나,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연임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레이건에게 '테컴세의 저주'가 실현되는 위기가 찾아온 것도 사실이다.  1981년 3월 30일에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레이건에 대한 암살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레이건이 암살당했으면 그야말로 테컴세의 저주는  '보기 좋게'  딱 들어 맞았을 텐데......   
  테컴세의 저주란, 1840년부터 시작된 불가사의한 사건으로,  20년 간격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美 대통령들은 재직중에 (간혹은 퇴임후 얼마 안가서)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망한다는  공포의 현상이었다.   
   
  실례를 따라가 보자.

 

  • 1840년-(제9대 美대통령)윌리암 ・H・해리슨、1841년 4월 4일 폐염으로 사거.
  • 1860년-에이브라함 ・링컨、1865년 4월 14일 암살당함.
  • 1880년-제임즈・가필드、1881년 7월 2일 암살.
  • 1900년-윌리암・매킨리、1901년 9월 14일 암살.
  • 1920년-워렌 ・G・하딩、1923년 8월 2일 심장발작으로 사거.
  • 1940년-프랭클린・루즈벨트、1945년 4월 12일 뇌일혈로 사거.
  • 1960년-죤・F・케네디、1963년 11월 22일 암살.
  • 1980年년-로날드・레이건、1981년 3월 30일 암살미수. 퇴임 15년후인 2004년 사거(향년 93세).

  보다시피, 위 리스트 중에서 레이건 만이 '테컴세의 저주'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대통령직을 만기퇴임했고, 퇴임후에도 15년을 더 살았다.    
레이건은 할리우드 배우로서는 B급 판정을 받았으나,  정치인로서는 '냉전의 평화적 종결자'로서 어느 정도의 평가는 얻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건이 정치인으로서는 A급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크게 이론(異論)이 따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국의 The Times지가  이번에 레이건을 '천하의 바람둥이'로, 그러니까 '색물(色物)'로 "뭉개버렸기" 때문에, 그리하여 레이건의 정치인으로서의 명예가 크게 '실추'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에----이는 좀 심하게 표현하면 레이건에 대한 '부관참시'로도 보여질 수 있다 ww~----레이건은 이런 굴욕을 당하는 것 보다 차라리 재임중에 "깨끗하게" 암살당하는 편이 낫질 않았을까? 그러면 '테컴세의 저주(Tecumseh's curse)'의 계보를 잇는 대통령으로서 美국민들에게 동정과 애도와 어느정도의 존경을  얻으며 사라져 갈 수도 있었을텐데... (Sophian=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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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건 대통령 업적 평가 ↓     
  레이건(1911. 2. 6~2004. 6. 5)은, 대통령 1기때는, 미국경제의 회복을 정책목표로 내걸어, 레이거노믹스로 대변되는 큰폭의 감세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실시, 쌍둥이 적자를 초래했다.    외교면에서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대에 이란혁명과 니콰라구아에서의 산디니스타 정권성립에 의해  친미독재정권들이 붕괴하자, 이 실지회복을 위하여 레이건은 외교에 관해서는 초강경책으로 일관했다. 베트남 전쟁 이래 본격적인 외국에의 무력개입이 된 그레나다 침공을 강행하여 "강한 미국"을 어필했다.  

    

  대통령 2기때는,   이란 콘트라 사건으로 대변되는 수많은 스캔들에 발목이 잡혀 각방면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이 빗발쳤지만, 레이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데탕트를 부정하며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비판했다.  「힘에 의한 평화」전략에 의해 소련 및 공산주의 진영에 대항하는 한편으로,「레이건 ・독트린」을 표방하며,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과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수상, 서독의 헬무트 콜 수상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세계에서 펼쳐지는 反공산주의 운동을 지원했다. 전자는 소련의 해체, 후자는 베를린의 벽 붕괴로 대변되는 동구라파제국(諸国)의 민주화로 연결되어,  레이건은 냉전의 평화적 종결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Sophian=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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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imes 詳細記事   

  “레이건, 할리우드 톱스타 50여명과 잠자리” 
  여성편력 폭로 책 14일 출간  
  “배우시절 먼로 등과 깊은 관계… 여배우들이 먼저 쫓아다녀”   

‘위대한 소통자’로 평가받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1911∼2004)의 여성 편력을 폭로한 책이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출간된다. 600쪽 분량의 ‘사랑의 삼각관계: 로널드 레이건, 제인 와이먼 그리고 낸시 데이비스’에는 레이건 전 대통령이 할리우드 배우 시절 로스앤젤레스(LA)의 한 고급 호텔에서 메릴린 먼로, 도리스 데이, 라나 터너 등 50여 명의 유명 여배우들과 성관계를 맺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영국 더 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일리노이 주 가난한 구두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레이건 전 대통령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호색남이 된 계기는 배우 에롤 플린(1909∼1959)과의 만남이었다. 플린은 여성들과 1만2500번 잠자리를 가졌다고 자랑하며 종종 레이건과 함께 호텔에 함께 투숙하며 친분을 쌓았다. 또 영화사 워너브러더스가 배우들을 홍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여배우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도 그의 여성 편력에 일조했다. 정계에 진출하기 전에 레이건 전 대통령은 할리우드의 B급 배우였지만 A급 여배우들과 잠자리를 가졌다. 그는 매력적인 미소, 큰 키, 근육질의 몸매를 갖추고 있는 데다 여자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한때 연인이었던 여배우 파이퍼 로리는 자서전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언론인 다윈 포터는 “여배우들은 레이건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그의 보수적인 정치 성향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그를 좋은 남자라고 말할 정도”라고 밝혔다. 이 같은 매력 덕분에 레이건 전 대통령은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고도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여배우를 쫓아다닌 게 아니라 여배우들이 그를 쫓아다녔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여배우 라나 터너와의 관계는 이를 잘 보여준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40, 50년대 육체파 인기 여배우였던 터너와 처음엔 만나기를 꺼렸으나 결국 워너브러더스의 압력으로 만나게 됐다. 그에게 푹 빠진 터너는 “레이건은 서두르지 않는 것을 좋아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4분짜리 남자라면 레이건은 40분짜리 남성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동료 배우에게 “터너는 나만큼 성욕이 지나치다. (동료 여배우인) 수전 헤이워드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그를 피해 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첫 번째 부인인 여배우 제인 와이먼과 이혼한 뒤 20대의 어린 먼로와 사랑에 빠졌다. 둘을 소개해 준 영화감독 필 칼슨에 따르면 레이건은 먼로를 “선정적인 여자”라고 묘사했다. 먼로는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당신을 알게 되면서 나는 더 선정적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대퇴골 골절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먼로는 매일 그의 병실을 찾았다. 영화 배우 윌리엄 홀든은 “먼로는 병실 문을 걸어 잠그고 그를 즐겁게 해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먼로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1940년대 유명 가수 겸 배우인 도리스 데이와의 결혼도 고려했다. 하지만 데이는 기다림에 지쳐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레이건은 당시 여배우였던 낸시 여사를 만나 재혼했다. 한편 이 책은 디즈니 영화사가 제작하고 있는 영화 ‘레이건’과 상반된 내용이라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책과 동일한 시기를 다루지만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과 국제사회에 끼친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입력 2015-02-03 03:00:00   수정 2015-02-03 10:00:10       


@ 2015-02-04 9: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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